'잡담'에 해당되는 글 204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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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21] 마지막 향방
- [2012/08/18] 비오고 난 후
내일 할거 많은데 잠이 안온다
아침되면 미친듯이 피곤하겠지
자주 일상 글을 쓰진 않지만 내가 보낸 한 시기의 기록을 다시 찾아 보기 힘들게 되는게 싫다.
인터넷을 시작하고 많은 일상 글을 남겼던 곳들
에듀넷,하이텔,다모임,세이클럽,드림위즈,마제스티내부게시판,
예전홈페이지의슈퍼보드,독투불패,벨게 등등..
예전홈페이지의슈퍼보드,독투불패,벨게 등등..
서비스 종료 혹은 변경으로 인한 DB오류 등으로 인해 글을 찾을 수 없는 곳이다.
마치 어릴 때 쓰던 일기장 혹은 앨범을 잃어버린 기분.
그래서 페이스북 시작화면의 '지금처럼 평생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더욱 인상적인지도.
다른 서비스는 망할 줄 알았나 페이스북도 언제 망하고
그 서버가 다 매각될지 모르는 일
그 서버가 다 매각될지 모르는 일
그냥 내가 DB를 관리 할 수 있는 내 홈페이지가 제일 맘 편한것 같다.
그런의미에서 오늘 백업이나 해야지.
금장을 찍고 롤에 맛들려서 어제 새벽까지 하다가 날이 밝아서 잠들었다.
주말에 낮밤이 바뀐 것도 있어서 자기 직전에 시계를 보니 6시 반.
불안함 속에 잠들었는데 눈떠보니 이미 10시 ㅎㅎ
이미 연차는 마이너스지만 12시까지 더 자려고 외출을 썼다.
회사가 지각이나 반차 등에 대해 별 언급하지 않는 건 참 좋은듯.
게다가 오늘은 왠지 하는것마다 한번에 되서 시간도 절약!
오랜만에 저녁에 운동하러 갔다.
하도 오랜만에 갔더니 스태미너가 떨어져서 미칠듯이 힘들다.
다른사람 케틀벨 들 때 맨손들고 버티고 낙법 앞구르기 하다가 머리 어지러워서 벽 짚고 ㅡㅡ
마지막 정점으로 삼각조르기 하다가 내 다리에 쥐가 났다 ㅋㅋㅋ
나랑 원투 치던사람 주먹이 날아오는게 다르다.
내껀 다피하고 쳐내고 슉슉 잘도 날아옴 ...
일주일에 세번은 가야지
내년 여름에는 그놈의 복근 사진좀 찍게
예전에도 설레발 떨던 태풍들이 많았는데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잊혀진게 대부분
이번 태풍은 뭐 풍속이 50m니 매미보다 세다느니 하지만
대한민국의 설레발 파워에 밀려서 상륙 후 급격히 약해지지 않을까 예상한다.
나중에 이런 태풍도 있었다는 기억을 남기려고 끄적임.
태풍이 끝나고 피해량에대해 리플도 달아봐야지.
내 기억 가장 인상적인 태풍은 91년의 태풍 글래디스다.
태풍 자체의 위력은 다른 태풍보다 약했지만 포항 경주 지방에 오래 머물면서 비를 뿌려댔기에
실제로 느낀 피해는 가장 컸다.
태어나서 처음 100미터 폭의 형산강이 200미터로 확장된 것을 보았으며
수위가 10미터 높이인 방천둑 높이만큼 물이 차오른 것을 보고
어린 마음에 너무 무서웠다.
방천둑이 뚫렸으면 시내가 물바다가 되지 않았을까.
물빠진 땅에는 커다란 가시고기들이 가득해서 고기를 건지러 다닌 기억도 있고
태풍이 지나간 후 형산강 다리 아래에 있던 우리 밭은 모든 경계가 사라져
아버지가 곡괭이로 다시 밭 경계를 긋던 기억도 있다.
옆의 밭주인인 영감부부가 경계를 우리쪽을 침범하게 더 많이 그어서 욕을하던 기억도
그 밭은 고수부지 개발하면서 땅문서도 없고 해서 그대로 시에 헌납했다.
지금 같았으면 고소했을텐데 ㅎㅎ
집에 내려가면 오랜만에 한번 가봐야겠다.
이번 태풍은 뭐 풍속이 50m니 매미보다 세다느니 하지만
대한민국의 설레발 파워에 밀려서 상륙 후 급격히 약해지지 않을까 예상한다.
나중에 이런 태풍도 있었다는 기억을 남기려고 끄적임.
태풍이 끝나고 피해량에대해 리플도 달아봐야지.
내 기억 가장 인상적인 태풍은 91년의 태풍 글래디스다.
태풍 자체의 위력은 다른 태풍보다 약했지만 포항 경주 지방에 오래 머물면서 비를 뿌려댔기에
실제로 느낀 피해는 가장 컸다.
태어나서 처음 100미터 폭의 형산강이 200미터로 확장된 것을 보았으며
수위가 10미터 높이인 방천둑 높이만큼 물이 차오른 것을 보고
어린 마음에 너무 무서웠다.
방천둑이 뚫렸으면 시내가 물바다가 되지 않았을까.
물빠진 땅에는 커다란 가시고기들이 가득해서 고기를 건지러 다닌 기억도 있고
태풍이 지나간 후 형산강 다리 아래에 있던 우리 밭은 모든 경계가 사라져
아버지가 곡괭이로 다시 밭 경계를 긋던 기억도 있다.
옆의 밭주인인 영감부부가 경계를 우리쪽을 침범하게 더 많이 그어서 욕을하던 기억도
그 밭은 고수부지 개발하면서 땅문서도 없고 해서 그대로 시에 헌납했다.
지금 같았으면 고소했을텐데 ㅎㅎ
집에 내려가면 오랜만에 한번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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